■ 이 책의 특징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는 종류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는 ‘자연파’, 최신 트렌드와 지역의 특성을 즐기고 싶은 ‘도시파’,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유적을 찾는 ‘역사파’가 있다. 물론 이 셋을 모두 즐기고자 하는 여행자들도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거리와 골목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역사를 만나는 산책길》은 ‘역사파’는 물론 ‘자연파’와 ‘도시파’를 아울러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 참고서다. 이 책은 여행을 천천히, 산책처럼 즐기는 이들을 위해 거리마다 골목, 골목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한 겹 한 겹 풀어서 들려준다.
비단 낯선 곳만이 그 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 주말이면 찾는 가까운 명소, 매일 걷는 길에 숨겨진 이야기를 담았다. 근현대의 산업화를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는 문래동이나 을지로 골목을 탐험하기도 하고, 역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행렬이었을 정조대왕의 능행차길을 창덕궁에서부터 수원 화성, 윤건릉까지 따라가며 곳곳의 명소를 살펴보기도 한다. 지금의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위인들의 발자취가 담긴 서대문형무소나 남영동 대공분실을 책에서나마 만날 때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우리는 역사를 거창한 것처럼 배워왔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 골목이 진짜 우리 역사의 현장이 아닐까. 과거의 내가 쌓여서 현재의 내가 만들어지듯, 모든 골목과 길, 마을과 도시 역시 과거의 이야기가 쌓여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오늘 출근길도, 주말에 지도에 의지해 거리와 골목을 헤매던 낯선 도시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새롭고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숨겨진 이야기를 곁들이면 매일 걷는 그 길도 새롭다
《역사를 만나는 산책길》은 교보생명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사이트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www.kyobostory.co.kr’에 실린 콘텐츠 가운데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역사탐방 길라잡이’ 가운데 19가지 이야기를 엮어서 만들었다.
1부 ‘파리가 부럽지 않은 역사도시, 서울’ 편에서는 서울의 이국적인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500년 동안 조선의 도읍이었던 서울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창덕궁을 비롯해 조선의 왕들이 살던 화려한 궁궐, 한양의 출입문이었던 사대문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유적들이 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이들 외에도 서울에는 건축된 지 100년을 갓 넘긴 이국적인 근대 건축물들이 있다. 6·25전쟁 후 도시 개발이 한창일 때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형성되기 전이라는 이유로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사라졌는데, 그 가운데 살아남은 건축물들이 이제 서울의 개성 있는 볼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근대 건축물들은 건축된 시기의 특성상 일제강점기의 상흔과 독립운동의 증거를 담고 있어서, 알고 나면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일제의 침략 야욕이 숨겨진 서울역과 서울시립미술관, 독립운동의 역사가 서린 중앙고등학교의 본관 및 동관과 서관, 경교장 등에 담긴 이야기를 읽다 보면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더해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낄 것이다.
두 번째 ‘화려함 뒤에 감춰진 처연한 왕의 길’에는 왕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의 왕에 관한 기록물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의 중립성과 상세함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되었다. 그 기록을 살펴보면 화려하기만 했을 것 같던 왕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인다. 이 책에서는 개혁군주이자 현군으로 평가되는 정조의 화려한 능행차에 담겨진 여러 의미들, 섬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왕이 된 철종의 불행, 망국의 왕이 된 고종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신격화되었던 왕들의 행적을 통해 그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개인의 고뇌, 시대의 비극과 함께 살펴본다.
▶사람들과 교감하며 변해가는 ‘도시’라는 생명체
세 번째 이야기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에서는 서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거리와 골목을 산책한다. 여기서 살펴보는 거리와 골목은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 거리는 그곳에 사는 사람,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변해간다. 흥망성쇠를 겪으며 시대를 뛰어넘는다. 일제 강점기에 전략물자 수송을 위해 도로가 발달해 덩달아 방직공장이 흥했던 문래동은 산업의 부흥기에는 철강골목으로 변했다가 최근에는 비싼 임대료 탓에 홍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예술촌으로 주목받고 있다. 1920년대에 적산가옥이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정세권 등이 보급형 한옥 단지를 조성한 이래 100년 가까이 주거지로 조용히 지내온 익선동은 최근 ‘뉴트로’라는 트렌트와 맞물려 화려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신라 시대의 문헌에 처음 등장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변화와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시장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삶이 있기까지’ 편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물려준 선조의 흔적을 각종 유적지에서 찾는다. 삼전도 굴욕의 역사 현장인 남한산성에서는 국가가 약할 때 지도자와 백성이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장사리 전투에서는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을 통해 이뤄낸 승리에 앞서 전쟁의 끔찍함을 다시 되새겨본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듯이,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모든 혜택이 과거 선조들이 많은 노력 끝에 얻어낸 성취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삶에 더 감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오늘을 이해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여주는 열쇠
인파와 볼거리가 화려한 거리, 고즈넉한 옛길,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어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골목, 유명한 건축물… 눈으로 훑어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곳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는 마법이 걸려 있다. 과거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또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흔적이 겹쳐지면 그곳은 이전에 맨눈으로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산책자들의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노벨상 수상 작가 펄 벅은 “오늘을 이해하고 싶다면, 어제를 살펴보라 If you want to understand today, you have to search yesterday”는 명언을 남겼다. 너무나 빠른 흐름 속에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과거를 더듬어보면서 우리 주변에 다시 눈을 돌린다면, 어느새 익숙해져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에서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특별한 감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