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소설은 완전한 기쁨을 주었다.
그는 응원의 태도를 발명하고 있다.”_임솔아(소설가)
“그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배역에게 바치는 경의
진지하되 위트 있고 상처받되 사랑을 잃지 않는, 바로 ‘당신’들의 이야기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정치적·윤리적으로 복잡한 겹을 지닌 현대 세계에서 길을 잃은 우리의 초상을 정확히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집을 여는 「세상 모든 바다」의 걸 그룹 ‘세상 모든 바다’ 콘서트장에서 마주친 하쿠와 영록. 하쿠는 영록에게 게릴라 콘서트가 뒤이어 열릴 것이라는 소문을 전하지만 그 소문에 몰려든 인파와, 주목을 위해 연출된 ‘테러’에 휘말려 영록이 죽고 만다. 죄책감에서 채 헤어나오기도 전에 사망 사고의 책임을 둘러싸고 모두가 서로에게 비난을 가하는 상황 앞에서 하쿠는 길을 잃는다.
이어지는 소설들은 짙은 안개가 깔린 듯 막막한 시야 가운데서 이정표처럼 날카롭게 솟는다. 예능 출연자들을 잔인하게 품평하는 악플 앞에서 “너네는 어쩌다 이렇게 좆같아졌어?”(「롤링 선더 러브」) 묻고, 일인분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도 약자라는 이유로 더욱 야멸차게 다그치는 세상 앞에서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묻는 서늘한 질문들로. 이 질문들은 이전과는 다른 국면을 열어젖힌다. 마르크스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민원을 받은 교사가 “파괴될지언정 패배해서는 안 되는 시험”(「보편 교양」)을 각오하게 되듯이. “세상은 정치적인 음악가에게는 약간의 존경을 적선하지만, 정치하는 음악가에게는 무자비하다는 걸”(「로나, 우리의 별」) 느끼며 조금씩 닳아가는 아이돌 ‘로나’를 팬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팬덤 정체성과 불가분한 현대인에게 잠재된 열광적인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가능성이 비로소 열린다.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만족해야 할까.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 좀’ 같은 제목의 글에 사람들이 쏟아놓는 댓글을 보면 가끔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더 잘살고 싶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어야 한다고. 솥뚜껑삼겹살도 즉석떡볶이도 먹지 말고 맥주도 마시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고 공부해서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남들 다 자리잡을 때 어리바리하고 게을렀던 우리가 ‘빡대가리’라고.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_「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33~134쪽
오늘날 요원하게만 보이는 ‘우리’라는 호명을 다시 타진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선 사람들의 다채롭고 고유한 정체성을 살피는 성실한 균형감각이 빛을 발한다. 마치 아홉 번의 삶을 거듭 살아온 것처럼, 김기태는 아홉 편의 이야기로 인생을 찍어낸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며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자신이 그간 연기를 펼쳐온 것은 아닌가 느끼며 “나다운 것이 뭐냐고”(「전조등」) 물을 때 인생이라는 연극의 컴컴한 장막이 살짝 펄럭인다. 그 무대 위에는 검은 비닐봉지 속 물컹거리는 무언가처럼 의뭉스럽기만 한 삶의 이면에도 “무슨 장난과 음모가 있든 살아야 할 시간이 많”(「태엽은 12와 1/2바퀴」)다며 의지를 길어내는 노인과, 카지노가 들어선 폐탄광촌에서 추상적이라 아무 힘도 없는 “꿈이나 희망” “미래”(「무겁고 높은」) 대신 ‘100킬로그램’에 도전하는 역도부 고등학생이 있다. 그들의 구체적인 고군분투를 고요히 지켜보는 김기태의 시선은 따스하되 섣불리 바벨을 들어주지 않는, 견고하고 올곧은 3인칭 시점의 도래를 예고한다.
견고하고 올곧은 3인칭 시점으로부터
우리의 세계를 바꿀 첫걸음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닫는 「팍스 아토미카」는 현대인의 내밀한 강박증을 2차세계대전 이후 핵이 만들어낸 위태로운 평화와 교차한다. 지극히 연약한 인간의 머릿속과 세계의 내부에 자리잡은 ‘핵’을 제거할 ‘결정적 주문’을 고안하기 시작하면서 개인과 세계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처럼 가혹한 세계를 향한 김기태의 응전은 비약 같은 낙관도, 손쉬운 비관도 아니라 ‘평범한 이’(이희우, 해설에서)들에 대한 진솔한 “응원”(임솔아)으로 펼쳐진다. 독자는 이 안의 어디에선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또한 전혀 몰랐던 삶의 방식을 우애어린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소설에서 바랄 수 있는 거의 전부가 아닐까. 경쾌한 위트와 리듬을 겸비한 채 삶의 고단함까지 사려깊게 짚어내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오늘 이후의 한국문학이 참조할 새로운 분기점으로서, 2020년대의 한국을 새로 재현하는 진지하고도 대담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소설은 위대한 정치적 선언문처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문학은 다수를 ‘단결’시키지 못하고, 적과 친구를 명확히 나누지 못한다. 다시 말해 문학은 정치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어떤 계기와 힘을 갖고 있지 않다. (…) 다만 소설에서 우리는 정치적 구호와는 다른 구호를 발견한다. 이 구호의 익히 알려진 의심스러움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구호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김기태가 가장 당대적인 방식으로 반복하는 그 구호는 이러하다. ‘평범한 자들이여, 들어오라.’
_이희우 해설 「평범한 자는 들어오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