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
부커상, 페미나상, 메디치상…
전 세계 문학상을 휩쓴 영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 40년 작품 세계의 종착역
줄리언 반스 생애 마지막 소설
2026년 1월 22일 전 세계 18개국 동시 출간
타인을 이해한다는 환상과 필연적 실패
전 생에 걸쳐 인간을 오독하는 소설가의 숙명
소설의 화자는 줄리언 반스와 겹쳐 보이는 노년의 소설가다. 관리 가능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한 혈액암 진단을 받은 그는 죽음과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는다. 친구들의 죽음, 흐려지는 기억, 조여오는 시간의 감각이 그를 재촉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실을 애도하거나 노화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노년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다”가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사물을 관찰하고 싶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반스는 자신이 평생 해온 일, 관찰하고 기록하고 질문하는 행위로 다시 돌아간다. 그는 소설 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심문한다. 소설은 과연 진실에 다가가는가, 아니면 삶을 과장하고 배신하도록 부추기는가. 작가가 타인의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순간 이미 어떤 윤리적 선을 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두 친구, 스티븐과 진의 관계를 통해 구체화된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 수십 년 뒤 다시 재회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는 줄리언이 있다. 그는 한때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깨뜨린다. 이 관계를 둘러싼 기억은 서로 어긋나고, 진실은 끝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반스는 이 불완전한 기억의 구조를 통해 우리가 타인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조차 얼마나 쉽게 오독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기억이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여든의 소설가가 평생 천착해 왔고 마침내 완성한 ‘기억’에 관한 최종 판결문
반스의 거의 모든 소설에서 기억은 의심의 대상이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시간이 덧입힌 이야기이며, 해석의 결과다. 그는 삶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정리하려는 인간의 충동을 경계하고, 오히려 흩어지고 모순된 상태 그대로 삶을 바라본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화자가 서술하는 이야기 또한 앞부분과 뒷부분은 있으나 중간이 비어 있다. 하이브리드식 글쓰기의 대가인 그는 이번에도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주장을 펼쳐나간다. 한 작가가 소설의 형태를 띠고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철학적 대화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다. 대가의 자리에 오른 여든의 소설가에게서 가르침이나 단정은 찾아볼 수 없다. 반스는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으며, 독자의 사고 능력을 끝까지 신뢰한다. 기억은 무엇인가, 사랑은 서로 같은 의미로 공유될 수 있는가, 우리는 과연 자신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이 소설은 읽는 동안 계속해서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 질문들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반스가 어떤 긴박함 속에서 이 소설을 쓴 게 틀림없다” _커커스 리뷰
끝을 예감하며 써 내려간 부커상 수상작가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소설
이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반스는 지극히 평범한 장면에 도달한다. 어딘지 모르는 나라의, 어딘지 모르는 소도시의 한 카페 실외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 사건도 결론도 없는 이 장면은, 그러나 반스의 작가 인생 전체를 등에 업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 장면과 가장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문장은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계속 사물을 관찰하고 싶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반스는 오래 관찰하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다. 반세기 동안 관찰자로 살아온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기 자신을 향한 농담(“사람은 오래 살수록 더 편집광적으로 보이게 된다”)을 잃지 않는다. 이 ‘교수대 유머’는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독자를 비탄에 빠지게 하지 않으며, 암과 죽음, 상실을 다루면서도 기이할 만큼 위로가 된다. 만약 이것이 정말 마지막이라면 줄리언 반스는 우아하게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마무리한 것이다.
무겁지만 웃기고, 진지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으며, 마치 지적인 친구와 인생을 논하는 듯한 독서 경험. 이토록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줄리언 반스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동시대 독자의 특권이었다. 더 이상 그 특권을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긴박감 속에서 쓰였기에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각별하게 애틋하다. 이 책으로 처음 줄리언 반스를 만난 독자라면 아마도 그의 모든 작품을 거슬러 읽게 될 것이다. 이 작가가 평생에 걸쳐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테니까.
나는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 (…) 당신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준 것에 감사하고 싶다-나의 암과 마찬가지로, 보이지는 않지만 늘 그곳에 숨어 있는 것에 대해. 우리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가르치는 작가는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거나 어떻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권위를 갖고 쓰지 않는다. 소설가는 더 큰 지혜를 가정한 자리에서 독자를 내려다보며 말하면 안 된다. 대신 나는 어딘지 모르는 어느 나라의 어딘지 모르는 어느 소도시의 한 카페 실외석에 앉아 있는 작가와 독자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따뜻한 날씨고 우리 앞에는 시원한 음료가 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우리 앞을 지나가는 다양하고 많은 삶의 표정을 바라본다. 우리는 지켜보다 생각에 잠긴다. 가끔 나는 중얼거린다. “저 한 쌍을 어떻게 생각해-결혼했을까, 아니면 바람?” “저 패션의 피해자들을 봐, 자기가 자기라는 데 너무 만족한 모습이 거의 감동적이야.” “저 사제는 어디를 저리 급히 갈까?” “저 키스는 무슨 의미일까?” “손을 잡은 나이 든 한 쌍-저런 모습을 보면 늘 뭉클해.” “저 남자는 부랑자일까 예술가일까?” “저게 싸우는 걸까, 아니면 그냥 연인의 장난스러운 습관일까-약간 체호프적이야.” “봐, 잭 러셀 같네, 저건 행운의 징조인데.” “이 날씨에 비가 오진 않겠지, 안 그래?”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해-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왜 저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를 보는 거지?” 보통의 대화에 섞여 있는 중얼거림, 그 가운데 하나가 이야기로 전이할 가능성이 있을지도(또는 없을지도) 모른다. 흘끔 보니 당신도 나와 함께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대답은 거의 듣지 못한다-당신은 나의 안 들리는 귀 쪽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안된 일이지만.
그럼에도 오랜 세월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기쁘게 여겼기를 바란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즐거웠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_본문에서